김일성주석과 다까기 다께오


김일성주석과 
다까기 다께오

 
 아버지!》
 
일본《요미우리신붕》의 론설위원회 고문이였던 다까기 다께오가 조선을 방문하여 위대한 김일성동지(1912-1994)를 처음 만나뵈온것은 주체 60(1971)년 12월 31일 저녁이였다.
이날 그는 김일성동지와 함께 어린이들의 설맞이모임장소인 평양학생소년궁전으로 갔다. 그이께서 궁전에 도착하시자 《만세!》의 환호성이 울리면서 《아버지!》,《아버지!》하고 부르며 저저마다 그이의 품에 안기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다까기 다께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아이들만이 아니였다. 그들을 가르치는 교원들도 《아버지원수님!》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있는것이였다.
(아! 김일성주석께서는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고 인민은 그이를 충심으로 받드는 가장 열렬하고 진실한 사랑과 믿음의 관계가 바로 사회주의조선에서만 볼수 있는 일심단결의 아름다운 화폭이 아닌가.)
   이날 다까기 다께오는 김일성동지께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 대단히 흥분되여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의 많은 나라 국가지도자들가운데 어린이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지도자는 오직 김일성각하 한분이라고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절세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다까기 다께오가 김일성동지를 또다시 만나뵈온것은 주체 61(1972)년 1월 어느날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 조선의 형편과 발전방향, 조선의 통일문제와 조일사이의 문제 등에 대하여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시였다.
다까기 다께오는 그이께 자기는 본사로부터 일본인민들이 널리 읽을수 있게 각하의 전기를 집필할데 대한 과업을 받았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난처한 기색을 지으시며 정 쓰려면 자신에 대해서는 적게 쓰고 인민들에 대하여 많이 써달라고 부탁하시였다.
다까기 다께오는 고심어린 탐구와 노력으로 조선방문기 《령도의 예술가 김일성》을 집필하였다. 방문기는 김일성동지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1972년 4월 15일부터 6월 1일까지 수십회에 걸쳐 《요미우리신붕》에 련재되였다.
조선을 적대시하는 일본의 당국자들과 우익세력은 정의와 진리를 지향하는 그의 붓대를 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 그는 집까지 저당잡히고 안해마저 잃게 되였다.
하지만 그 어떤 압력과 위협공갈도 절세의 위인을 흠모하며 따르는 그의 신념과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그는 일조문화교류협회를 결성하고 조일 두 나라 인민들사이의 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75년 5월 다까기 다께오는 또다시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는 백두산의 넓은 지대를 편답하고 도서 《백두산에 타오르다》의 제1부와 제2부를 단시일에 집필하였다.
그는 그후 도서의 제3부 《만주유격전기》를 집필하던중 병환으로 쓰러졌다.
그는 제자들에게 원고의 마감을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민족은 김일성주석을 중심으로 반드시 통일을 이룩하고야 말것이다. 이것이 력사가 나가는 방향이다. 일본사람들은 이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나는 평양에서 생을 마치고싶다.》
 
김일성주석과 다까기 다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