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종이

 
조선종이는 예로부터 세계에 널리 알려져왔다.
조선에서 4세기 후반에 력사책들을 출판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그 이전시기부터 종이제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고구려(B.C. 277년-A.D.668년)시기의 유적에서는 매우 희고 섬유질이 균일하며 면밀하게 짜여져있는 종이가 발견되였다. 이것은 당시의 종이표백기술과 섬유를 다듬이질하여 그 질을 균일하게 하는 기술이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고구려는 610년에 담징(고구려시기의, 화가)을 일본에 보내여 종이제조기술을 배워주기도 하였다.
고려(918년-1392년)시기의 종이는 글을 쓰고 인쇄하기에 적합하며 질기고 앞뒤가 반질반질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송나라(중국)에서는 고려종이를 제일로 여겨 이를 구하여 글을 쓰는것이 상류층사람들의 자랑으로 되였으며 조선의 사신들이 가지고 가는 선물품목에는 반드시 조선종이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조선종이가 가죽보다 질기다고 하여 등피지라고 하였다.
조선종이는 글을 쓰는데는 물론 우산과 부채를 만들거나 옷솜을 대신하는데 리용되였으며 과일이나 과줄 등을 담는 그릇, 바느질그릇을 비롯한 각종 장식함을 만드는데도 리용되였다.
조선종이